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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리/지정학과 분쟁

북아일랜드 폭력 사태와 재경계화(re-bordering)

by 디에고가르시아 2021. 11. 2.

https://www.bbc.com/news/uk-northern-ireland-56664378?fbclid=IwAR1WDfA68cbVWcNRnEttxx1NnEpXzC1nP4Dzaoyw2E07PyQb2d-Xx_5vXjE 

 

NI riots: What is behind the violence in Northern Ireland?

Brexit, paramilitaries and the fallout from an IRA man's funeral lie behind rising loyalist tension.

www.bbc.com

2021년 4월 14일 BBC 기사

 

 

지난 10일동안 북아일랜드에서 지난 몇년 이내로 최악의 폭력사태가 발생해서 70명 이상의 경찰이 부상을 당했다. 북아일랜드의 모든 정당들이 폭력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종식"을 요구했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3월29일 런던데리에서 시작한 폭력사태는 벨파스트, 캐릭퍼거스 등에서의 항의와 시위로 퍼져나갔다. 주로 왕당파(loyalist, 영국의 북아일랜드 합병 지지자) 젊은이들이 경찰관과 차량 행렬에 벽돌, 불꽃놀이, 휘발유 폭탄을 던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수요일 밤 싸움은 종파간 충돌로 번졌다. 개신교 왕당파 공동체와 가톨릭 민족주의파(nationalist,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연합을 지지함)를 갈라놓은 '평화의 벽'의 문이 부서졌고 난장판이 되었다. 북아일랜드의 분쟁은 평화협정으로 종결된 지 23년이 지났다. 폭력사태의 배후에 왕당파 준군사조직이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연방주의자(Unionist, 영국과 북아일랜드 연방 지지자)은 이번 폭력사태를 영국과 EU 브렉시트 합의의 결과로 아이리시 해에 경계선이 놓이면서 왕당파가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본다. 새로운 무역 경계선은 북아일랜드 의정서의 결과이며, 아일랜드 섬에 대한 엄격한 국경의 필요성을 피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이 의정서는 북아일랜드가 EU의 단일 상품 시장에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영국에서 북아일랜드로 넘어가는 제품들은 EU 수입 절차를 거친다. 연방주의자는 그것이 무역에 해를 끼치고 영국에서 북아일랜드의 입지를 위협한다고 말한다. 지난 1월, 아이리시 해 경계선을 반대하는 낙서가 북아일랜드의 일부 왕당파 지역의 벽에 새겨져 있었다.

 

일부 노조 지도부는 지난해 6월 전직 IRA 정보국장 장례식에서 코로나 규정을 위반한 공화당 신 페인(Sinn Féin) 당 지도부를 기소하지 않기로 한 데 따른 폭력 사태로 보고 있다.

 

 

 

 

기사에 첨부된 사진. "No Irish sea border" "Ulster sold out"

브렉시트 이후 아이리시 해에 새로운 해양 무역 경계를 반대하고 있고, 특히 "얼스터가 팔렸다"는 표현이 인상적임.

영국이 북아일랜드를 합병하고 있는 현 상황을 당연시하는 왕당파 및 연방주의자 입장에서

새로운 해양 무역 경계로 인해 북아일랜드(얼스터)가 아일랜드에게 팔렸다고 인식하는 것...

 

 

북아일랜드 분쟁? 요즘 잠잠한 곳 아니었던가? 지금 왜 문제이지?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는 한일관계와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영국은 17세기부터 아일랜드를 식민화하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고, 19세기에는 아일랜드를 합병하였다. 이후 일어난 가열찬 독립운동과 1차대전 이후 불어닥친 민족자결주의 열풍으로 인해, 영국은 1921년 아일랜드 북부의 얼스터(Ulster) 지방을 영국령 북아일랜드로 남겨둔다는 조건하에 아일댄드 독립을 승인하였다. 이는 마치 한반도 독립 당시 부산 일대를 일본령으로 남겨두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과도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북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 공화국으로의 통일운동이 끈질기게 이어져 오고 있다.

미즈오카 후지오 편저(이동민 역), 2013, <세계화와 로컬리티의 경제와 사회> p.141

 

http://www.yes24.com/Product/Goods/8687519

 

세계화와 로컬리티의 경제와 사회 - YES24

이 책은, 글로벌 시대로 일컬어지는 오늘날의 세계화 추세 그리고 그 와중에서 새롭게 중요시되고 있는 로컬리티라는 대립적이면서도 긴밀하게 얽혀 있는 두 개의 개념을 지리학의 눈으로 설명

www.yes24.com

 

북아일랜드 분쟁 원인을 지리적으로 설명하는 글 중에 가장 인상깊게 본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글

일본이 우리나라 독립시켜주면서 부산 일대만 독립 안시켜준 것과 비교하다니...

잔인하면서도 제대로 비교시켜주는 일본 지리학자 ㅠㅠ

 

아일랜드 섬 내의 북아일랜드/아일랜드 경계는 영국에 의해 놓인 '부가적 경계(superimposed border)' 성격이 있음

개신교계 영국인들이 많이 사는 얼스터 주의 일부만 빼놓고 나머지 아일랜드만 독립시켜주면서

아일랜드 섬의 북부에 강제적으로 경계선을 설정했으니...

 

한때 북아일랜드 분쟁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분쟁지역이었음

IRA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리고 이들의 무장 투쟁이 격화되던 1970년대 이후에는 국제 뉴스에도 많이 나왔음

북아일랜드 유혈 분쟁을 다룬 영화 '블러디 선데이'도 있었음

 

 


 

그러다가 북아일랜드 분쟁은 1998년에 평화 협정의 체결로 사실상 종식됨

북아일랜드에서 물리적 폭력은 극히 만나기 힘들어지게 됨

게다가 영국, 아일랜드의 EU 가입으로, 아일랜드 섬의 부가적 경계는 사실상 의미가 약화됨

EU 가입국 및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맺은 '솅겐 조약'으로 인해,

마치 아일랜드 섬의 경계가 사라진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옴(탈경계화 de-bordering)

이는 사람, 물자, 자본이 국경을 초월하여 교류하는 글로벌화 시대와도 맥락을 같이하고

유럽의 여러 국가, 민족이 서로를 구별짓지 않고 함께 평화롭게 사는 분위기에도 편승함

 

그러다가 최근의 '유러피언 드림의 종말?', 그리고 '반글로벌화' 움직임과 관련하여

결국 영국이 최근 브렉시트, 즉 EU를 탈퇴하게 됨

하지만 아일랜드는 EU를 탈퇴하지 않았으므로, 영국은 아일랜드와 다시 국경의 의미를 재협상해야 함

한동안 국경을 넘어가는 사람, 물자, 자본에 대한 통제가 없었는데

이에 대해 얼마나,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에 대한 협상..

 

특히 물자의 검문에 대한 절차에서, 영국과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에 있던 기존 국경의 투과성은 그대로 두고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의 바다인 아이리시 해에 해양 무역 경계를 설정함

즉, 브리튼 섬에서 아일랜드 섬(아일랜드, 북아일랜드)로 들어오는 물자를 검문하기로 결정함

이는 재경계화(re-bordering)의 개념으로도 설명이 가능할것임

글로벌화, 로컬화 속에서 여러 정치적, 경제적 주체들이 새롭게 경계를 만들거나 재강화하는 현상..

 

이러한 결정은 '브리튼 섬과 북아일랜드가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영국 중심주의자들(위에서 언급한 왕당파, 연방주의자 등)의 반발을 초래하게 됨

마치 북아일랜드를 아일랜드에게 '팔아먹은' 것과 같다며..

 

 

 

 

https://www.bbc.com/news/explainers-53724381

 

Brexit: What's the Northern Ireland Protocol?

The EU has outlined new proposals for the Northern Ireland Protocol.

www.bbc.com

2021년 10월 13일 BBC 기사

 

아이리시 해 무역 경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가 있어서 가져와봄

 

 


 

 

세계지리 교과서에서도 북아일랜드 분쟁은 한때 단골로 출제되던 곳임

그런데 주로 종교분쟁 단원, 가톨릭교도(아일랜드인)와 개신교도(영국인) 간의 '종교 분쟁'이란 설명이 있었음

물론 영국인과 아일랜드인들은 종교가 다르긴 하지만,

종교보다는 민족, 제국주의 식민 관계 등이 더 큰 분쟁의 원인이었을텐데... 갸우뚱한 부분이 있었음

 

그러던 와중, 북아일랜드 분쟁은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종식'된 것으로 여겨져

2010년대 이후에는 세계지리에서도 북아일랜드 분쟁이 문제화되는 경우가 극히 드문것 같음

 

하지만 위 기사와 같이, 북아일랜드 분쟁이 다시 격화된다면? (그럴 확률은 낮겠지만, 그냥 사고실험)

그렇다면 세계지리 교과서에서 이 분쟁은 '종교 분쟁'이 아니라

'글로벌 시대' 속에서 '재경계화'의 사례로 다루면 좋을듯 함